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노사의 굴욕 (문단 편집) == 오해 == 교황 권력의 위상은 교황청에 군사적인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세력의 존재 유무에 크게 달려 있었으며, 해당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교황청은 중세 서유럽의 핵심 행정 세력이자 상당한 세속 세력이기도 한 교회 영지들에게 달린 이권 문제를 활용하고, 교리를 명분으로 내세워 왕권과 봉신 권력 사이의 다툼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교황이 무소불위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실질적으론 신성 로마 제국의 봉신 권력의 증대, 최후의 거점이었던 바리의 상실로 인한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 상실, 그리고 교회와 교황권에 친화적인 강력한 세속 영주들의 지지가 모두 모인 결과였으며, 그로 인해 [[십자군]]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원정으로 전 서유럽이 헤딩하러 가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가르치는 교과서에서는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 유수를 각각 기독교와 왕권의 '정점'이라고만 설명하고 끝내니, [[아비뇽 유수]]를 이 사건의 연장선으로 인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비뇽 유수는 카노사의 굴욕과는 '''아예 무관하다.''' 아비뇽 유수는 신성 로마 제국과 교황청의 충돌이 아닌, [[프랑스 왕국]]과의 충돌이었으며,[* 오히려 이 시기에 신성 로마 제국은 교황청 편이었다.] 세속 권력과 교황청이 충돌한 사건이란 점만 같지, 본질적으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앙 권력 vs. 지방 권력'''이라는 중대한 담론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황당한 처사이다. 이는 교황권이라는 것이 교회가 서유럽 세계에 가지는 위상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주변 세력으로부터 교황청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무려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나폴레옹의 공격으로 교황청이 개박살 날 때까지 이어왔던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로마 교구의 권력 줄타기가 핵심이고, 그게 잘 풀리면 자연스럽게 교황청이 세속 권력마저 강력하게 쥐게 되는 것이고, 안 풀리면 [[사코 디 로마]] 같은 꼴이 났다. 아비뇽 유수는 기존 세속 권력의 꽃(?)이었던 개별 봉신들의 권력이 대폭 약화됨에 따라, 왕권으로 결집되는 세속 권력의 영향을 교황청이 억누를 수 없게 됨과 동시에, 각종 세력 변동으로 인한 서유럽 사회 구조 급변의 결과, '''교황이 적대적인 세속 군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게 된 상황'''이 일으킨 사건이다. 물론, 교황의 처신 문제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카노사의 굴욕과 같다고 할 수 있으나, 둘을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애초에 위협을 가한 세속 권력이 신성 로마 제국이 아니라 '''프랑스 왕국'''인데 어떻게 이 둘을 하나로 이어진 사건으로 보겠는가?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고, 세속 권력도 쇠락하고, 서유럽 세력 구조가 교황에 적대적으로 변하게 된 결과, 교황권이 총체적으로 약화됐음이 교황청의 강제 이전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났을 뿐이지, 아비뇽 유수 한참 이전부터, 기존 사회 구조가 격변을 겪으면서 교황권 개념 자체가 십자군 원정과 그 이전의 교황권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된 지 오래였다. 물론, 숙고 집회의 결성과, 그를 통한 필연적인 권력 분립에 따라 왕권의 개념이 단순 철권통치가 아닌, '''권위를 통한 은은한 압력'''으로 변모한 것을 따지면, 카노사의 굴욕이나 아비뇽 유수 모두 진주인공은 교황청이다. 물론 실질적 세속 권력보다는 ''''권위''''에 특히 의존하는 교황권은 단순히 처세술 따위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명백한 "권력"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권위를 통한 압력을 이용하는 후대의 세속 군주권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교황권이 정말로 불안정한 입지에 있었음은 무시하기 어렵다.[* 이는 근현대의 '''문명화된''' 권력 구조와, 전근대적인 주먹구구식 (Ad Hoc) 권력 구조의 본질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그만큼 '''숙고 집회'''의 존재는 중요하다.] 한편, 교황권은 단순히 아비뇽 유수 등으로 그 실추된 위상을 악랄하게 알리고 종 친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강력한 종교적 권위 행사를 통해 서유럽의 정신적 지주이자 교회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시즌 2를 찍어왔다. 여전히 꾸준히 막대한 위상을 자랑하던 교황청은, 하필이면 '''소빙하기'''로 인해 천하 만민들이 고통받으며 교회에 간절히 답을 구할 때, '''면벌부 장사나 해 처먹는''' 만행을 저질렀고, 그로 인한 막대한 반발로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이것이 '''변동하는 서유럽의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30년 전쟁으로 이어졌다.[* 고통스러운 시기에 면벌부 장사나 해 처먹는 교회에 대한 서유럽 사람들의 배신감이 얼마나 막대했는지,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서유럽의 미술이 완전히 뒤집어 엎어졌을 정도이다. 그 충격은 가히 '''아우구스투스의 신격화'''에 맞먹는 수준이다.] '''세속 권력 간의 알력'''이 사건의 중요한 축이란 점에서 차라리 30년 전쟁이 카노사의 굴욕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물론, 아비뇽 유수와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은 나폴레옹의 교황청 침공이다.[* 마침, 교황청을 위협한 세속 권력이 둘 다 프랑스 (...) ~~가톨릭의 장녀라며~~ --가톨릭의 불효녀--] 애초에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 유수는 300년이란 긴 텀이 존재하기에 연속된 사건이라 보기도 좀 그렇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